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서울: 민음사, 1998), 中.
N A C H T S
밤에

밤에 흠뻑 잠겨. 이따금 골똘히 생각하기 위하여 고개를 떨구듯 그렇게 흠뻑 밤에 잠겨 있음. 사방에는 사람들이 잠자고 있다. 그들이 집 안에서, 탄탄한 침대 속에서, 탄탄한 지붕 아래서, 요 위에서 몸을 쭉 뻗치거나 오그린 채, 홑청 속에서, 이불 밑에서 잘자고 있다는 조그만 연극 놀음, 순진무구한 자기 기만. 사실은 그들이 언젠가 그때처럼 그리고 후일 황야에서처럼 함께 있는 것이다, 벌판의 막사, 헤아릴 수 없는 수효의 사람들, 하나의 큰 무리, 한 민족이 차가운 하늘 밑 차가운 땅 위에 내던져져 있는 것이다, 이전에 서 있었던 곳에 이마는 팔에 박고 얼굴은 땅바닥을 향한 채 조용히 숨쉬며. 그런데 네가 깨어 있구나, 파수꾼이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찾자고 곁의 섶나뭇더미에서 꺼낸 불타고 있는 장작을 휘두르는구나. 왜 너는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

D E R  F A H R G A S T
승객

나는 전차의 입구 쪽 입석에 서 있다. 이 세계, 이 도시, 나의 가족 안에서 나의 위치를 헤아려보니 여지없이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 어느 방향에서든 간에 내가 이러이러한 권리를 마땅히 내세울 수도 있을 거라고는 나는 기나가는 말로라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 입구 쪽 입석에 서서 가죽 손잡이에 매달려 이 전차로 하여금 나를 실어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 사삼들이 전차에서 비켜서거나 말없이 지나치거나 쇼윈도 앞에 멈추어 서 있다는 사실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다.―하기야 누가 나더러 그러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또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전차가 어느 정류장에 나까워지자 한 처녀가 내릴 채비로 발판에 다가선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더듬어보기라도 한 듯이 분명하게 보인다. 검은 옷을 입었는데 치마 주름은 미동도 하지 않고 블라우스는 꽉 끼이며 촘촘히 짠 흰 레이스 깃이 달렸고, 왼손은 펴서 벽을 짚고, 오른손에 든 우산 끝은 위에서 두번째 발판에 닿아 있다. 그녀의 얼굴은 갈색이고 양끝이 살짝 눌린 코는 둥글넓적하게 마무리져 있다. 머리는 숱이 많은 갈색에다, 오른쪽 관자놀이에는 귀밑머리가 나부끼고 있다. 그녀의 작은 귀가 바싹 붙어 있는데도, 내가 가까이 서 있기 때문에 오른쪽 귓바퀴의 뒷면 모두와 귀뿌리 언저리의 그늘이 보인다.
  그때 나는 자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가, 그녀가 스스로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그 비슷한 말도 하지 않는 일이?라고.